溫谷의 따뜻한 생명 읽기

肝 간으로 가는 길 · 제14편

第1程. 공보다 먼저 움직인 몸

움직임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溫谷 · · 13분

10월로 접어들자 해가 눈에 띄게 짧아졌다.

경기장 게이트를 통과해 관중석 통로를 빠져나오자, 탁 트인 시야 위로 선선한 밤공기가 불쑥 살갗을 파고들었다. 낮 동안 그라운드에 머물렀던 볕의 온기는 온데간데없고, 관중들의 옷차림도 며칠 사이 부쩍 두터워져 있었다. 경기장 사방을 밝히는 거대한 조명탑 아래로, 푸른 잔디와 정갈하게 다져진 황갈색 흙이 선명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내야석 중간쯤에 자리를 잡았다. 플라스틱 접이식 의자는 차갑고 단단했다. 외투 깃을 살짝 여미고 엉덩이를 깊숙이 밀어 넣었다.

주변은 야구장 특유의 부산한 소음으로 가득했다. 통로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소리, 겉옷자락과 팔꿈치가 스치는 바스락거림, 갓 튀겨낸 치킨과 기름진 감자튀김 냄새, 캔맥주 뚜껑을 딸 때 나는 경쾌한 파열음. 앰프에서는 귀에 익은 응원가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쥔 막대 풍선을 박자에 맞춰 부딪치고 있었다.

오랜만에 찾은 야구장이었다. 복잡한 일상은 잠시 잊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아무 생각 없이 한 경기 보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밤 나는 그저 오랜만의 야구장이 반갑고, 경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경기는 빠르게 흘러갔다.

외야 펜스를 향해 뻗어 나가는 날카로운 타구에 관중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일어섰다가, 공이 수비수의 글러브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탄식과 함께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타자가 바뀌고, 투수가 바뀌고, 이닝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나 역시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그 흐름에 섞여 들었다.

점수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밤은 깊어갔고, 뺨을 스치는 바람은 한층 더 차가워졌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전광판에는 어느새 붉은 불빛으로 ‘9회말’이 떠 있었다.

스코어는 4 대 3. 한 점 차.

홈팀의 마지막 공격이었다. 선두 타자가 볼넷을 골라 걸어 나가더니, 다음 타자의 빗맞은 타구가 내야수의 키를 살짝 넘기며 주자가 둘로 불어났다. 관중석의 함성이 점차 술렁임으로 바뀌는 사이, 침착한 희생번트로 주자들은 한 베이스씩 더 진루했다.

이어진 투아웃에서 고의사구까지 나오며 모든 베이스가 찼다.

9회말, 투아웃 만루.

이제 안타 하나면 경기가 끝나고, 공 하나면 모든 공격이 무산되는 자리였다.

그 무렵부터 경기장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눈에 들어오던 넓은 그라운드가 시야에서 지워졌다. 전광판의 번쩍이는 문자도, 1루와 3루 쪽 응원단의 율동도, 통로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흐릿한 배경으로 물러났다.

소리도 변했다. 수만 명이 지르는 함성과 북소리가 분명 크게 울리고 있었지만, 그 누구의 목소리도 또렷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모든 소리가 둔탁한 공기 덩어리처럼 하나로 뭉쳐져 귓가를 멍멍하게 에워쌌다.

공간은 아까와 다름없이 넓었지만, 내 눈앞에 펼쳐진 세계는 마운드와 홈플레이트 사이의 좁고 메마른 흙길 하나로 좁아져 있었다.

마지막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천천히 배트 끝으로 타석 주변의 흙을 서너 번 툭툭 차서 골랐다. 발 간격을 미세하게 벌려 지면을 단단히 디디고는, 장갑의 벨크로를 ‘찌익’ 소리가 나게 뜯었다가 손등의 힘줄이 도드라질 만큼 팽팽하게 다시 당겨 붙였다. 배트를 홈플레이트 모서리를 가볍게 한번 찍은 뒤, 양손으로 그립을 꽉 쥐어 어깨 위로 비스듬히 세웠다. 시선은 마운드 위의 투수에게 꽂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루상의 주자들도 자세를 고쳐 잡았다.

3루 주자는 베이스에서 홈을 향해 서너 걸음 조심스럽게 발을 떼어놓으며 상체를 숙였다. 2루 주자는 양팔을 살짝 벌린 채 무릎을 굽혀 무게중심을 낮췄고, 1루 주자의 신발 코는 언제든 앞으로 튀어 나갈 각도로 흙을 파고들어 박혀 있었다.

그 동안 나는 내가 어떤 자세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등이 이미 플라스틱 등받이에서 한 뼘이나 떨어져 나와 있다는 것도, 상체가 좌석 앞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한 손은 무릎을 짚은 채 바지 천을 쥐어짜듯 누르고 있었다.

관중석의 소음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수만 명이 모여 있는 스타디움인데 주변이 이상할 만큼 조용해졌다. 옆자리에서 들리던 캔맥주 찌그러지는 소리도, 소소하게 나누던 잡담도 뚝 끊겼다.

앞자리에 앉은 남자는 앞 좌석의 플라스틱 등받이 모서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옆자리 사람은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아 깍지를 낀 채 굳어 있었고, 대각선 앞쪽의 누군가는 입술에 주먹을 갖다 댄 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것도 앉은 것도 아닌 자세로, 엉덩이를 허공에 살짝 띄운 채 멈춰 선 사람도 있었다.

직접 공을 던지거나 쳐야 하는 사람은 저 아래 그라운드에 서 있는 몇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왜 저 멀리 관중석에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몸까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굳어버린 채 한 방향을 향해 자세를 바꾸고 있었던 것일까.

포수가 쪼그려 앉아 다리 안쪽으로 손가락을 내밀었다. 마운드 위의 투수가 모자챙을 살짝 만지며 그 손짓을 바라보았다.

투수가 고개를 옆으로 한 번 작게 저었다. 포수의 손가락 모양이 바뀌었다. 투수의 시선이 잠시 멈추었다가, 턱을 아래로 아주 작게 까딱였다.

그 짧은 끄덕임 뒤에 야구장의 시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웅성거리던 소음은 깊은 물밑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아득하게 멀어졌다. 시야에는 마운드 위에 선 투수의 손끝과 발끝만이 칼로 오려낸 것처럼 또렷하게 남았다.

나도 모르게 숨을 가슴 가득 들이마셨다.

투수가 두 손을 모았다.

공을 쥔 오른손을 가슴 앞 글러브 속으로 깊숙이 밀어 넣으며 몸을 멈추어 섰다.

타자는 배트를 조금 더 높이 세웠고, 주자들은 지면을 향해 무게중심을 한 뼘 더 낮추었다.

내 무릎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 끝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상체는 의자 앞쪽으로 조금 더 밀려 나갔다. 입술은 단단히 다물어졌고, 조금 전 들이마신 숨은 목구멍 안쪽에 턱 걸린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모두가 멈추어 있었다.

그라운드에서도, 관중석에서도, 아무런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그 정지 속에서 공기의 밀도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정적이 깊어질수록 곧 무언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압력이 경기장을 메웠다.


투수가 다리를 들었다.

앞발이 마운드의 흙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무릎이 가슴께까지 올라가며 몸 전체가 축을 따라 비틀렸다.

1초도 되지 않는 찰나, 모든 몸이 동시에 반응했다.

타자의 허리가 아래로 살짝 가라앉으며 어깨 위의 배트가 미세하게 뒤로 물러났다. 3루 주자의 상체가 홈 플레이트를 향해 왈칵 쏟아질 듯 기울었고, 1루 주자의 발끝이 흙을 강하게 짓눌렀다. 옆자리 관객의 입에서 “흡—” 하고 짧게 공기를 삼키는 소리가 샜다. 앞자리 남자의 어깨가 단숨에 위로 솟구쳤다.

내 손가락은 바지 천을 찢을 듯 강하게 쥐어짜고 있었다. 상체는 이미 허공에 몸을 던진 사람처럼 좌석 모서리 끝까지 앞으로 쏠려 있었고, 가슴 안에 갇힌 숨은 여전히 터져 나오지 않았다.

바로 그때, 투수가 동작을 풀었다.

공을 쥔 팔이 앞으로 뻗어 나오는 대신, 허공에 들려 있던 다리가 맥없이 땅으로 툭 떨어졌다. 모아쥐었던 두 손이 스르륵 풀려 바지 옆 솔기 쪽으로 내려앉았다. 투수는 숨을 한 번 고르더니, 마운드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겨 흙을 툭툭 털어내며 바닥의 하얀 로진백을 집어 들었다.

타자가 타임을 요청했는지, 주자의 움직임이 거슬렸는지, 포수와의 사인이 맞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공은 손을 떠나지 않았다. 배트는 허공을 가르지 않았고, 주자들은 한 발짝도 달리지 않았다.

점수판의 숫자도, 아웃카운트도, 볼카운트도 그대로였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시간이 허공에서 뚝 끊기듯 풀려버렸다.

“후우………….”

목구멍 안쪽에 갇혀 있던 숨이 그제야 길게 터져 나왔다. 더운 입김이 턱 밑으로 쏟아졌다.

숨을 내뱉고 나서야 비로소 내 몸의 상태가 감각되었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뻐근했다. 무릎을 어찌나 세게 누르고 있었는지 손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깨는 잔뜩 올라가 귓바퀴 가까이 굳어 있었고, 턱관절은 어금니가 욱신거릴 만큼 단단하게 맞물려 있었다. 엉덩이는 플라스틱 좌석의 맨 앞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채, 상체는 여전히 허공을 향해 기울어 있었다.

주변에서도 일제히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

앞자리의 남자는 움켜쥐었던 등받이를 놓고 뒤로 풀썩 등을 기댔다. 옆자리 사람은 무릎 위의 깍지를 풀며 굳은 손을 털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가두어두었던 숨을 한꺼번에 토해내면서 경기장 전체가 얕게 출렁거렸다.

투수가 동작을 멈추고 나서야 나는 내가 조금 전까지 어떤 몸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차렸다. 공은 아직 날아가지도 않았는데, 내 몸에는 이미 그 공을 향해 온 힘을 쏟던 자세가 굳은 채 남아 있었다.

등받이에 천천히 등을 기대자 당혹감이 밀려왔다. 가만히 앉아 있었을 뿐인데.

나는 마운드 위의 투수도, 타석에서 공을 노려보는 타자도, 홈을 향해 몸을 날려야 하는 주자도 아니었다. 그저 표를 사서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일 뿐이었다.

그런데 왜 내 숨은 멎어 있었을까. 왜 내 손가락은 바지를 찢을 듯 힘을 주고 있었고, 몸은 타석을 향해 뛰어들기라도 할 것처럼 의자 끝까지 기울어져 있었을까.

나는 방금 움직인 것일까, 움직이지 않은 것일까.

내 몸은 경기장 안에서 단 한 걸음도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나는 의자 위에 앉아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 내 몸이 그저 멈추어만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움직임이란 몸이 공간 속에서 실제로 위치를 옮긴 뒤에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일까?

의문은 마운드와 타석으로도 옮겨갔다.

투수는 공을 던지지 않았고,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으며, 주자들도 베이스를 밟은 채 발을 떼지 않았다.

기록지로만 본다면 그 몇 초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은 텅 빈 시간이었다.

과연 그 몇 초 동안 그라운드 위에는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일까.

던지지 않은 공 안에는 정녕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것일까. 허공을 가르지 않은 배트에는 어떤 궤적도 들어 있지 않았을까. 첫발을 떼지 않은 주자의 다리 안에서는 아직 어떤 질주도 시작되지 않았던 것일까.

바깥으로 실행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움직임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투수가 흙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마운드 중심에 섰다. 모자를 고쳐 쓰고, 포수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타자는 타석에 서서 배트를 고쳐 쥐었다. 주자들은 다시 베이스에서 조심스레 몸을 떼어냈다. 관중석의 사람들도 언제 등을 기댔냐는 듯 다시 의자 끝으로 상체를 밀어 올렸다. 나 역시 어느새 다시 상체를 앞으로 기울인 채 무릎 위에 손을 얹고 있었다.

다음 투구를 기다리는 동안,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은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 내가 보던 것은 공이 손을 떠난 뒤의 궤적과 배트에 맞아 날아가는 공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공이 던져지기 전부터, 다음 순간을 향해 미세하게 무게를 옮기고 몸짓을 바꾸는 사람들이 보였다.

타자의 단단히 굳은 발목, 주자의 낮게 가라앉은 허리, 관객들의 질려가는 손가락, 그리고 내 목구멍 안쪽에서 다시 잠기는 숨.

모두가 아직 오지 않은 사건을 향해 이미 몸부터 기울이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왜 결정적인 움직임 앞에는 늘 이토록 깊은 멈춤이 놓이는 걸까.

투수는 온몸을 회전시켜 공을 뿌리기 직전 가장 고요하게 멈추어 선다. 타자는 시속 150킬로미터의 공을 쳐내기 직전 미세한 떨림조차 지우듯 자세를 굳힌다. 주자는 전속력으로 내달리기 직전 땅바닥을 쏘아보며 미동도 하지 않고, 수만 명의 관객조차 함성을 내지르기 직전 숨을 들이켜고 입을 닫는다.

폭발하듯 뻗어 나가기 위해 몸은 왜 먼저 이토록 조용해져야 하는가. 멈춤은 움직임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다음 움직임이 만들어지기 위해 가장 팽팽하게 힘을 모으는 상태에 가까웠다.

투수가 다리를 들어 올리자 타자의 몸이 반응했다. 타자의 어깨가 가라앉자 주자의 다리가 팽팽해졌고, 그라운드의 긴장이 관중석 수만 개의 몸을 한꺼번에 의자 끝으로 끌어당겼다.

움직임은 한 사람의 몸 안에서만 시작되는 것일까.

투수가 먼저 움직였기 때문에 모두가 그를 따라 움직였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투수 역시 타자가 서 있는 자세와 3루 주자의 보폭, 포수의 미트 위치, 경기장 전체를 누르는 공기의 압력을 온몸으로 감각하며 자신의 동작을 조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몸들은 저마다 고립되어 있지 않았다. 한 공간 안에서 서로를 응시하는 무수한 몸들이 팽팽하게 얽혀 서로의 자세를 바꾸고 호흡을 맞추어 가고 있었다. 내 몸이 앞으로 기운 것도 내 의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운드와 타석, 관중석이 함께 만들어낸 팽팽한 장(場) 속에서 내 몸 역시 저들의 움직임과 한 덩어리로 엮여 반응하고 있었다.


투수가 다시 다리를 들어 올렸다.

이번에는 멈추지 않았다. 디딤발이 흙을 강하게 파고들며 몸의 중심이 앞으로 넘어갔다. 팔이 허공을 휘감아 돌았고, 손가락 끝을 떠난 하얀 공이 밤공기를 가르며 포수의 미트를 향해 꽂혀 들어갔다.

타자의 허리가 회전축을 따라 비틀리며 배트가 호를 그렸다.

‘쩍—!’

묵직하고 날카로운 파열음이 경기장을 갈랐다. 그 한 번의 충돌로 억눌려 있던 정적이 일시에 풀리며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공이 배트에 닿는 순간, 타자의 상체는 타격의 반동을 이겨내며 한 바퀴 거칠게 돌아갔다. 그는 배트를 내던지며 지면을 박찼고, 스파이크에 채인 흙먼지가 뒤편으로 튀어 올랐다. 턱을 가슴에 바짝 붙인 채 이미 1루 베이스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루상에 얼어붙어 있던 주자들도 동시에 튀어 올랐다. 3루 주자는 홈플레이트를 향해 몸을 던지듯 내달렸고, 1루와 2루의 주자들은 모자가 벗겨질 만큼 거센 기세로 다음 베이스를 향해 질주했다. 그들은 타구의 행방을 쳐다보지도 않고 팔을 세차게 흔들며 달렸다.

수비수들의 몸도 즉각 움직였다. 투수는 공을 던진 여파로 비틀거리던 균형을 다잡으며 허리를 세웠고, 내야수들은 타구의 궤적을 쫓아 잔발을 구르며 무게를 옮겼다. 외야수들은 낙하지점을 가늠하며 일제히 등을 돌려 펜스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관중석.

파열음이 고막을 때림과 동시에 수만 명의 몸이 의자에서 솟구쳤다. 앞자리 남자는 등받이를 박차며 허공으로 두 손을 번쩍 쳐들었고, 옆자리 사람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두 다리도 바닥을 박차고 일어나 서 있었다. 손은 허공을 휘젓고 있었고, 가슴속에 가두어두었던 숨은 거친 고함이 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갔다. 정적으로 가득 차 있던 경기장이 단 1초 만에 질주하는 몸들과 함성, 흙먼지로 뒤섞였다.

그러나 그 소용돌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밤하늘의 조명 속으로 하얗게 치솟았던 타구가 더 뻗어나가지 못하고 힘없이 꺾이더니, 외야수의 글러브 속으로 툭 떨어졌다.

빗맞은 외야 뜬공이었다.

사방으로 내달리던 질주가 일제히 멎었다. 1루를 향해 전력으로 달리던 타자의 다리가 풀리며 속도가 줄었고, 홈으로 쇄도하던 3루 주자는 흙먼지 위에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외야수가 공을 담은 글러브를 들어 올리자 경기장을 채웠던 열기가 빠져나갔다.

경기가 끝났다.

누군가는 자리에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고, 누군가는 얼싸안으며 소리쳤다. 전광판의 숫자가 4 대 3으로 굳어졌고, 선수들은 더그아웃에서 나와 서로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토록 긴장하며 지켜보던 승패였지만, 정작 결과는 내 안에서 빠르게 흐려졌다. 공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최종 점수가 몇 대 몇이었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물결에 섞여 걸었다. 차가운 가을밤 바람이 달아올랐던 이마를 식혀주었다. 사람들은 출구 계단을 내려가며 방금 끝난 승부의 아쉬움과 환희를 저마다 떠들고 있었다.

계단을 한 걸음씩 내려오는 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던 것은 공이 배트에 맞아 터져 나가던 광경이 아니었다. 투수가 공을 던지려다 문득 멈추었던, 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몇 초간의 정적이었다.

그날 밤 나는 수많은 움직임을 보았다. 외야로 뻗어 나가던 타구도, 흙먼지를 일으키며 튀어나가던 주자들의 질주도, 배트와 공이 부딪치던 순간의 폭발력도 보았다.

그런데도 내 몸에 가장 선명한 감각으로 남은 것은 아무것도 던져지지 않았던 그 짧은 멈춤의 순간이었다.

나는 한 걸음도 내딛지 않았고, 공은 손을 떠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내 몸은 이미 그 공을 받아내려는 듯 타석을 향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움직임은 자리를 바꾸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공간 속에서 위치를 이동하기 훨씬 전부터, 몸은 이미 어딘가를 향해 방향을 잡고 무게를 옮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 몸은 대체 언제부터 움직이고 있었던 것일까.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야구장의 조명탑 불빛이 등 뒤로 멀어졌다.

자리를 옮기기도 전에 몸이 이미 바깥을 향해 먼저 기울어진다면, 그 움직임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인간이 야구를 하고, 관중석에서 그 경기를 숨 죽여 지켜보기 훨씬 전에도, 언어를 만들고 생각을 하기 훨씬 전에도, 생명은 먹이를 쫓고 위험을 피하며 세계 속으로 몸을 내던져왔다. 뼈와 근육이 생겨나기 전, 태초의 바다에서 하나의 세포로 떠돌던 생명들조차 무언가를 향해 먼저 몸을 기울이고 다가갔을 것이다.

생명은 언제부터 세계를 향해 이렇게 먼저 움직여왔던 것일까.

가을밤의 선선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며, 대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을 품은 채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