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谷의 따뜻한 생명 읽기

肺 폐로 가는 길 · 제11편

第8程. 나를 놓치지 않는 숨

호흡을 바라보며 백(魄)의 흔적을 만나다

溫谷 · · 14분

책상 위에 놓인 패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패드 화면 한가운데에는 ‘백(魄)’과 ‘감정’이라는 두 단어, 그리고 그 둘을 감싸 안은 커다란 원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장례식장을 다녀온 뒤 며칠째 그곳에서 마주했던 몸과 감정의 파동을 어떻게든 문장으로 옮겨 보려 애쓰는 중이었다.

'슬픔은 마음속에 갇힌 심리적 그림자가 아니다. 몸과 세계 사이의 관계가 통째로 무너지면서 일어나는 신체적 사건이다.'

나는 그 문장을 몇 번이고 고쳐 썼다. 그러나 그날 몸이 겪어낸 슬픔의 실체는 여전히 언어의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더 적절한 표현을 찾아 자판을 두드리려던 순간,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뒤늦게, 장례식장에서 반응했던 몸의 감각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위아래 어금니가 단단히 맞물려 있었다. 양 어깨는 바짝 치솟아 굳어 있었고 목구멍은 말라붙어 있었다. 노트북과 패드를 번갈아 살피느라 눈가의 근육마저 팽팽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속을 드나드는 숨이 쇄골 언저리에서 얕게 맴돌고 있었다.

감정에 관한 글을 쓰고 있었지만 그 글에 담으려던 감정이 되살아나 내 몸을 먼저 뒤흔들고 있었다. 내가 기록해 둔 타인의 굳은 자세와 얕은 숨이 자판을 두드리는 내 몸 위에 고스란히 겹쳐 있었다. 어떻게든 이 답답한 긴장에서 벗어나려는 듯 나는 노트북 화면 속 문서에 문장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슬픔과 자율신경계의 반응, 그리고 백(魄)과 현대 인지과학의 정동(情動)이 만나는 접점을 찾고 싶었다. 그 연결고리를 신경생리학의 언어로 촘촘히 엮어내면 이 답답한 긴장감도 함께 풀릴 것만 같았다. 그러나 문장이 늘어나고 개념이 더해질수록 굳어버린 흉곽은 좀처럼 내려앉지 않았다.

그 장면을 다시 떠올릴수록 장례식장에서 마주했던 상주의 핏기 없던 차가운 손과 영정사진 속 온화한 미소, 그리고 그 위로 드리워진 검은 띠의 서늘함이 되살아나 숨을 더욱 조여올 뿐이었다. 내가 머리로 이해한 것은 감정의 구조일 뿐 삶의 무게에 흔들리는 몸의 실제 고통은 아니었다. 第7程에서 느꼈던 무력감이 다시 가슴을 짓눌렀다.

당시 내게 필요한 것은 감정을 조금 더 그럴듯하게 표현할 문장이 아니었다. 그 문장들이 남긴 무게를 힘겹게 받아내는 내 몸 곁에 조용히 머물 자리가 필요했다.

풀리지 않는 생각의 매듭을 잠시 내려놓으려는 듯 나는 컴퓨터 검색창에 단어 몇 개를 입력했다.

‘초보자 호흡명상’, ‘아나빠나사띠 입문’, ‘인덕원 위빠사나’.

수도권 남쪽의 한 전철역 인근, 평범한 상가 건물 안에 있는 명상원에서 ‘초심자를 위한 호흡 알아차림’이라는 이름의 오후 공개 수업이 열리고 있었다.

第6程에서 정의한 백(魄)에 대해 더 쓰기보다 잠시 내 숨의 흐름을 가만히 바라보기로 했다.


늦은 오후의 인덕원 인근 업무지구는 퇴근을 준비하는 도시의 번잡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대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거친 소리, 식당과 주점의 화려한 간판, 골목을 가르는 배달 오토바이의 진동 사이로 오래된 상가 건물이 서 있었다. 1층 식당의 환풍기에서 풍겨 오는 기름 냄새를 맡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 벽면에 붙은 층별 안내판에는 치과, 세무사 사무실, 입시학원의 이름과 함께 명상원 이름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깊은 산사가 아니라 이렇게 분주한 일상의 건물 한가운데에서 숨을 바라보게 된다는 사실이 묘하게 안도감을 주었다.

백(魄)이 저 멀리 초월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밥을 먹고 걸어 다니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몸의 질서라면, 그 숨을 마주하는 자리 역시 이 소란한 도심의 한복판이어야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5층 복도 끝의 낡은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 두고 문턱을 넘었다. 30평 남짓한 마룻바닥 위에 좌복과 방석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먼저 도착한 대여섯 명의 사람들은 아직 서로 낯선 듯 적당한 간격을 두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공간이 완벽하게 고요하지는 않았다. 창문 틈으로 대로변의 간헐적인 경적 소리가 스며들었고, 위층 학원에서는 의자를 끄는 둔탁한 소리가 났으며, 천장의 냉난방기에서는 낮은 바람 소리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명상이란 소음이 차단된 진공 속의 평온이 아니라, 잡음 속에서도 흩어진 주의를 몸과 숨으로 다시 데려오는 일이라고 공간이 먼저 말해 주는 듯했다.

자리에 앉자, 지도자가 초보자들에게 불교 수행의 큰 틀을 담담한 목소리로 짚어 주었다.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가라앉히는 사마타(samatha),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여 지혜를 얻는 위빠사나(vipassanā),
그리고 두 수행 모두에서 오랜 세월 동안 핵심 바탕이 되어온 들숨과 날숨을 끊임없이 알아차리는 아나빠나사띠(ānāpānasati).
이 세 수행법에 대한 안내가 이어졌다.

복잡한 불교 교리나 아나빠나사띠의 16단계 수행 체계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초심자가 그 자리에서 바로 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숨을 일부러 길게 늘이거나 깊게 만들려고 애쓰지 마세요. 긴 숨이 들어오면 긴 줄 알고, 짧은 숨이 들어오면 짧은 줄 알면 됩니다. 숨을 억지로 통제하지 말고, 코끝이나 윗입술, 가슴이나 배처럼 숨의 감각이 가장 분명하게 느껴지는 자리에 그저 가볍게 주의를 두어 보세요.”

생각을 억지로 없애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고 했다. 주의가 다른 생각이나 소리로 흩어졌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 알아차림과 함께 다시 자연스러운 숨으로 부드럽게 돌아오면 된다는 조용한 당부가 덧붙여졌다.


종소리가 맑게 울리고 명상실 안으로 고요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눈을 가볍게 감고 지도자의 말대로 숨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방금 전까지 아무 탈 없이 저절로 이어지던 호흡이 순간적으로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워졌다. 들숨을 어디까지 들이마셔야 적당한지 신경이 쓰였고 날숨을 끝까지 비워야 한다는 강박이 따라붙었다. 숨이 얕고 짧아지면 내가 지금 명상을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일었고, 어느새 곁에 앉은 이들의 고르고 조용한 숨소리와 내 거친 숨소리를 은근히 비교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내버려두어야지’ 하는 의도마저 또 하나의 인위적인 조작이자 긴장이 되어 숨을 가로막았다.

숨을 가만히 바라보라는 말을 따랐을 뿐인데, 내 몸이 스스로 해오던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 갑자기 잘 해내야 하는 과제로 바뀌어 있었다.

호흡을 그저 가만히 바라보려 이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했지만 주의가 닿는 순간 나는 이미 그 흐름에 개입하고 있었다.

호흡에 집중하려 할수록 몸은 고요해지기는커녕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더 시끄러워졌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앉으려 하자 등과 허리의 근육이 팽팽하게 굳어왔고 접어 둔 발목과 무릎은 저려 왔으며, 방석의 모서리가 닿는 피부의 압박감은 점점 통증으로 변해갔다. 코끝의 서늘함보다 뺨 언저리의 간지러움이 더 선명하게 주의를 빼앗았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과 옆 사람의 조심스러운 옷자락 스치는 소리마저 유난히 또렷하게 귓가에 걸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직 10분도 안 지나갔을까.’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바쁜 일상에 가려 있던 몸 안팎의 소음과 긴장이 한꺼번에 의식의 전면으로 밀려 나오는 시간이었다.

그때 지도자의 낮은 목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호흡을 놓쳤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의가 흩어진 것을 알아차린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들어오는 숨으로 돌아오면 됩니다.”

나는 통증에 쏠려 있던 주의를 거두어 코끝으로 가져왔다. 시간에 쫓기는 조급함에서 한 번의 날숨으로, 바깥의 경적 소리에서 흉곽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돌아왔다. 돌아옴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수십 번 흩어지고 수십 번 생각에 빠져들었으며, 그때마다 다시 숨의 자리로 발걸음을 돌렸다.

第4程과 第5程에서 머리로만 사유했던 '복귀(復歸)'를 몸으로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복귀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不動)이 아니라 흔들렸음을 알아차리고 다시 몸과 숨의 자리로 돌아오는 회복의 능력이었다.

숨을 조작하려 애쓰던 긴장을 조금씩 내려놓자, 호흡이 생각보다 훨씬 넓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코끝을 스치는 좁은 공기의 흐름만 느껴졌다. 들이쉴 때의 미세한 서늘함과 내쉴 때의 은근한 미지근함. 그러나 주의가 차분히 머물자 그 숨은 코끝에서 멈추지 않았다.

들이쉴 때 가슴 아래쪽이 부드럽게 들려 올라가고 갈비뼈 사이의 공간들이 사방으로 미세하게 벌어졌으며, 그 움직임을 따라 복부가 천천히 앞으로 밀려 나왔다. 내쉴 때에는 팽창했던 흉곽이 천천히 제자리로 잦아들며 척추를 따라 공기의 무게감이 아래로 가만히 내려앉았다.

나는 그동안 호흡을 그저 가슴속 허파가 하는 일처럼 생각해 왔다. 하지만 한 번의 온전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 위해 목과 늑골, 등줄기와 복부, 심지어 골반에 이르는 온몸의 근육과 뼈대가 조금씩 자리를 바꾸며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第6程에서 마주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테이블 위의 커피잔 하나를 들어 올리기 위해 시선과 손가락, 손목과 어깨, 척추와 호흡이 의식이 지휘하기도 전부터 정교하게 협응하고 있었던 것처럼 호흡 역시 폐(肺) 하나가 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온몸이 함께 추는 군무(群舞)였다.

그렇게 호흡의 감각에 젖어 들던 중 주의가 어느새 장례식장의 서늘한 기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패드 화면에 남겨 둔 문장들과 풀리지 않던 슬픔의 무게가 다시 생각을 집어삼켰고, 나는 방석 위에 앉아 숨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생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어디에 마음이 가 있었든, 지금 몸으로 들어오는 한 번의 숨으로 돌아옵니다.”

지도자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고, 나는 화들짝 놀라며 다시 코끝으로 밀려드는 차가운 공기를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낯선 사실 하나가 문득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는 한동안 장례식장의 슬픔과 상실의 상념에 깊이 빠져 호흡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숨을 잊고 있던 그 시간에도 숨은 한 번도 끊기지 않고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숨을 놓치고 있었지만,
숨은 나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내가 돌보지 않아도, 내가 명령하지 않아도, 내가 상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 순간에도 몸 깊은 곳에서는 화학수용체가 혈액의 변화를 감지하고 뇌간의 오래된 신경망이 호흡근을 움직이며 묵묵히 다음 숨을 길어 올리고 있었다.

거창한 성찰이라기보다 그저 소박한 발견에 가까웠다. 다만 숨을 잊고 있던 동안에도 나를 살려 두던 몸의 성실함을, 그 오래된 질서의 침묵을 처음으로 실감했을 뿐이었다.

호흡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장례식장의 슬픔이 씻은 듯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고인의 부재는 여전히 차가운 현실이었고, 남겨진 이들의 무너진 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인간적 무력감 또한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달라진 것은 슬픔이라는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몸의 상태였다. 몸 구석구석을 팽팽하게 조이고 있던 긴장의 매듭이 어느새 스르르 풀려 있었다. 날숨 끝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아도 다음 들숨이 저절로 부드럽게 차올랐다.

장례식장의 서늘한 기억이 다시 떠올라도 이전처럼 숨이 턱 막히며 그 상념 속으로 송두리째 빨려 들어가지 않았다. 슬픔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거대한 슬픔과 나 사이에 숨 한 번이 편히 드나들 만큼의 작은 틈이 생겨났을 뿐이었다. 명상은 상실의 흉터를 그대로 품은 채 그 무게 곁에 잠시 나란히 앉아 숨을 고르는 일에 가까웠다.

그 고요 속에서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왜 그토록 많은 종교적 수행 전통이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호흡을 그 첫 문턱으로 삼아 왔을까.

초기 불교의 아나빠나사띠뿐만 아니다. 인도의 프라나야마와 만트라 낭송, 동아시아 도가와 유가의 조식(調息)과 수식(數息), 가톨릭의 묵주기도와 동방 그리스도교의 예수기도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교리와 세계관을 지닌 여러 전통은 호흡, 그리고 호흡과 결합한 신체적 리듬을 내면을 닦는 중요한 방편으로 삼아 왔다.

이 전통들을 하나의 원리나 기법으로 환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각 전통이 지향했던 해탈과 합일, 수양의 목표는 분명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호흡이 이토록 널리 수행의 도구가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어느 정도 헤아릴 수 있었다.

호흡은 살아 있는 한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는 가장 가까운 생명의 신호다. 호흡은 정동(情動)의 변화를 몸에서 가장 가까이 드러내는 징표 가운데 하나다. 감정이 요동칠 때 호흡은 함께 거칠어지고, 마음이 잦아들 때 그 리듬도 달라진다. 더구나 호흡은 흩어진 주의를 ‘지금, 여기’의 구체적인 감각으로 되돌려놓는 통로를 매 순간 열어준다.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까닭은 따로 있다. 호흡은 저절로 이어지는 자율(自律)과 의식이 개입할 수 있는 의지(意志)가 한 몸 안에서 가장 선명하게 겹치는 경계면이다.

현대 생리학 역시 호흡의 이 이중성에 주목해 왔다. 우리의 내장 기관 대부분은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있다. 우리는 심장더러 더 천천히 뛰라고 직접 명령할 수 없으며 위장의 연동운동을 의지로 조절할 수도 없다. 호흡 역시 평소에는 뇌간의 자율적인 신경망과 혈액 속 화학수용체의 피드백을 통해 의식의 개입 없이도 정밀하게 조절된다. 그러나 호흡은 다른 자율신경계 기능들과 달리 대뇌피질의 수의적(隨意的) 조절이 곧바로 개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능이다.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 숨을 멈출 수도 있고 깊게 들이쉬거나 느리게 내쉴 수도 있다.

자율과 수의가 이렇게 겹쳐 있기에, 호흡은 의식하는 '나'와 내 명령 없이도 몸을 살려 두는 '체화된 생명지능'이 만나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된다.

의식이 호흡을 통해 몸의 자율적인 영역과 접속할 때, 신체 내부에서는 조용한 공명이 일어난다. 우리의 심장 박동은 일정한 간격으로 기계처럼 뛰지 않는다. 숨을 들이쉴 때는 심박이 미세하게 빨라지고 숨을 내쉴 때는 심박이 느려지는 이른바 호흡성 동성부정맥(respiratory sinus arrhythmia)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2001년 이탈리아의 연구진이 발표한 소규모 실험은 흥미로운 단초를 보여 주었다. 라틴어 묵주기도를 암송하거나 요가의 전통 만트라를 읊조릴 때, 사람들의 호흡은 자연스럽게 분당 약 6회의 느리고 규칙적인 주기로 동조되었다. 그러자 심박과 혈압의 변동이 호흡의 리듬에 맞춰졌고 혈압을 조절하는 압력수용체반사(baroreflex)의 감수성도 높아졌다.

최근의 뇌과학 연구들 또한 한 가지 사실을 조심스럽게 보고하고 있다. 코를 통해 드나드는 호흡의 리듬이 후각 신경망을 넘어 편도체와 해마 같은 정서·기억 중추의 신경세포 진동과 동조하며, 주의와 감정 식별에 미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숨의 파동은 흉곽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심장 박동과 혈관의 탄성, 뇌의 신경망에 이르기까지 몸 안의 여러 리듬이 그 물결을 따라 함께 출렁이고 내수용감각(interoception)은 그 출렁임을 읽어낸다.

그러나 이러한 생리학적 설명만으로 방석 위에서 일어난 경험 전체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날 내가 경험했던 아나빠나사띠는 심박변이도를 높이기 위해 분당 호흡수를 6회로 맞추는 의도적인 호흡 훈련(paced breathing)과는 달랐다. 지도자는 숨을 억지로 길게 늘이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들고 나는 숨을 판단 없이 알아차렸을 뿐이었다. 흩어졌던 주의가 몸과 숨으로 돌아오면서 굳어 있던 긴장이 조금씩 풀렸고, 호흡은 그 결과로 차츰 잔잔해졌다.

내 마음이 잠시나마 슬픔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가 함께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앉아 있었던 시간,
소음 속에서도 안전하게 느껴졌던 공간의 품,
지도자의 담담하고 평온한 목소리,
타인들과 함께 같은 고요를 나누고 있다는 연대감,
그리고 슬픔을 억지로 해결하거나 몰아내지 않아도 된다는, 스스로에게 건넨 허락.

그날의 고요는 이 모든 것이 함께 만든 하나의 경험이었다.

현대 과학은 이 경험을 이루는 여러 생리적 과정들을 정교하게 밝혀낼 수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상실의 무게를 짊어진 채 방석 위에 앉아 다시 숨으로 돌아오는 회복의 과정 전체를 하나의 신경물질이나 생리적 기전의 이름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유는 다시 백(魄)으로 돌아왔다. 그날 눈을 감고 내가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은 코끝을 지나는 공기의 온도, 가슴의 들썩임, 배의 작은 압력 변화 정도였다. 혈액 속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화학수용체도, 뇌간에서 숨의 리듬을 만드는 신경세포들의 발화(發火)도, 여러 호흡근의 협응도 나는 보지도, 조절하지도 못했다.

내가 만난 것은 그 거대한 질서가 아니라 그것이 감각의 표면에 남긴 물결자국이었다. 호흡은 백(魄) 그 자체가 아니었다. 의식 뒤편에서 몸을 살려 두는 백(魄)의 오래된 질서가 의식의 가장자리에 잠깐 얼굴을 비추는 창(窓)이었다.

슬픔에 빠져 숨을 잊고 있던 그 시간에도 백(魄)이라 불러 온 그 생명지능은 멈추지 않았다. 장례식장이 떠오르면 가슴이 조여들고 숨이 달라졌다. 마음이 코끝으로 돌아오면 몸의 긴장도 조금씩 다시 맞춰졌다. 지나간 경험과 지금 눈앞의 세계, 몸의 무의식적인 반응과 의식의 알아차림은 따로따로 놓인 계단이 아니었다. 하나의 몸 안에서 쉼 없이 서로를 빚으며 돌고 있었다. 그 아래에서는 지금도 내가 알지도 시키지도 못하는 수많은 작용이 지치지 않고 다음 숨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호흡을 바라본다는 건 백(魄)을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환원하는 일이 아니라, 그것이 몸의 감각 위에 남긴 물결자국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짧은 종소리가 세 번 울려 명상 수업의 끝을 알렸다. 천천히 눈을 떴다. 사람들은 저린 다리를 조용히 주무르고, 방석을 정리하고, 겉옷을 챙겨 입었다. 뭔가 대단한 것을 얻은 얼굴은 없었다. 다들 조금 가벼워진 어깨로 각자의 저녁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다. 유리문이 열리자 퇴근길 차량들의 헤드라이트, 식당 냄새, 사람들 말소리, 찬 밤바람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신호등 앞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고 주머니 속 휴대전화의 진동을 확인하며 걷는 사이 나는 다시 숨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숨은 다시 의식의 뒤편으로 물러나 있었다.

슬픔은 그대로였고 이후의 삶은 여전히 소란할 것이다. 그래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깊은 곳에서, 한순간도 나를 놓치지 않는 숨이 걸음을 따라 묵묵히 드나들고 있었다.

그 조용하고 성실한 존재의 이름을 나는 여전히 백(魄)이라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