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谷의 따뜻한 생명 읽기 · 오장순례
序 들어가며 · 제1편
오장순례(五臟巡禮)를 시작하며
溫谷 · · 3분
생명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물음은 오래 사유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 탐구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는 좀처럼 분명해지지 않았다. 본격적인 실마리가 열린 것은 발생학을 들여다보면서부터였다.
단 하나의 수정란이 끊임없이 분열하고 분화하며 마침내 정교한 장기와 신경망을 갖춘 온전한 생명체로 나아가는 모습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제각각 움직이는 듯한 무수한 세포들이 어떻게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하여 조직과 몸을 완성해 내는가. 이 형태 형성의 과정은 생명을 작동시키는 거대한 통합적 질서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현대 생명과학은 이 과정을 유전 정보의 발현과 정교한 분자 신호전달 체계라는 두 축으로 설명한다. 분자세포생물학, 생리학, 신경과학이 이룬 눈부신 성취는 생명의 작동 원리를 하나의 정밀한 기계를 해부하듯 명료하게 보여주는 듯했다.
그러나 세부 기전을 파고들수록 환원주의적 접근이 지닌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미시적 데이터는 생명을 구성하는 개별 부품을 더없이 정밀하게 보여주었지만, 그 무수한 기전을 조율해 하나의 유기적 전체로 엮어내는 통합적 질서 자체는 쉽게 포착되지 않았다. 현미경의 배율을 높일수록 관찰되는 대상은 늘어났지만, 정작 규명하려 했던 ‘생명 전체의 통합적 원리’는 파편화된 정보 뒤로 물러서는 듯했다.
그 지점에서 『황제내경(黃帝內經)』을 비롯한 고전의학 문헌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고전의학은 세부 조직을 미시적으로 분해하기보다, 신체 전반의 유기적 관계망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거시적 지형 속에서 조망한다.
이러한 관점은 침구학의 원전인 『영추(靈樞)』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가느다란 침 자극만으로 신체 전체의 흐름을 조율하는 이 체계의 중심에는 ‘신(神)’이라는 화두가 놓여 있다. 『영추』가 말하는 신(神)은 단순한 관념적 비유가 아니라, 신체 조절과 생명 유지의 본질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인 듯 보였다.
이 신(神)의 실체를 현대적 언어로 번역하고 규명하기 위해 인지과학과 이론생물학, 그리고 물리학의 성과들을 교차해 읽기 시작했다. 칼 프리스턴(Karl Friston)의 자유에너지 원리, 프란시스코 바렐라(Francisco Varela)의 자기생성(autopoiesis)과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이론은 의식이 뇌라는 고립된 기관의 단독 산물이 아니라 유기체 전체의 생명 유지 활동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나아가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제시한 ‘접힌 질서(implicate order)’ 개념은 보이지 않는 전체성이 어떻게 구체적인 생명 현상과 의식으로 드러나는지를 설명하는 유용한 사유의 틀을 제공했다. 고전의학이 말하는 신(神)과 현대 과학이 추적하는 의식은, 생명체의 자기조직화 질서라는 근원적인 지점에서 서로 맞닿아 있었다.
이 글에서는 현대 과학의 이론적 성과와 고전의학의 직관이 만나는 지점을 탐색하고자, 『영추』 「본신(本神)」 편에 기술된 오장(五臟: 肝·心·脾·肺·腎)과 오신(五神: 魂·神·意·魄·志)의 체계를 사유의 이정표로 삼는다.
그 출발점으로 폐(肺)를 택했다. 폐는 첫 호흡으로 삶을 시작하고 마지막 숨으로 생을 마감하는 기관이자, 고전의학에서는 경락 순환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영추』는 폐에 백(魄)이 깃든다고 보았는데, 백(魄)은 고차원적 의식이 개입하기 전에 신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묶어내는 가장 원초적인 생명 질서에 해당한다. 생명과 마음이 교차하는 지점을 규명하려는 이 작업에서 폐와 그에 깃든 백은 자연스러운 출발점이다.
이 작업은 고전의학과 현대 과학을 기계적으로 접합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세부 기전을 파고들수록 놓치기 쉬운 ‘생명과 마음의 통합적 질서’를, 고전의 사유 틀과 현대 과학의 성과를 비추어 보며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보려는 탐색이다.
각 장기마다 10~12편의 에세이를 쓰게 될 것이다. 오장을 모두 지나면 60편 안팎의 글이 모이리니, 이는 짧은 탐색이 아니라 기나긴 여정이 될 것이다.
생명의 원리를 규명하려는 물음은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마주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여정의 기록들이 몸과 마음, 그리고 살아 숨 쉰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있게 사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효한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溫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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