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谷의 따뜻한 생명 읽기 · 오장순례
肺 폐로 가는 길 · 제13편
第10程. 숨이 닿은 깊은 뿌리
魄(백)을 통해 바라본 생명의 첫 얼굴
溫谷 · · 9분
늦가을 산골의 아침 공기는 차고 날카로웠다. 차에서 내려 문을 닫자, 들이마신 첫 숨에 코점막이 바짝 조여들었다. 그 긴장은 폐포 깊은 곳까지 번졌다.
마을 어귀에는 오랜 세월을 버텨온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풍성하던 잎을 거의 다 떨군 나무의 회갈색 굵은 줄기에서, 수없이 갈라진 가지들이 늦가을의 창백한 하늘을 그물처럼 가르고 있었다. 좌우로 굵게 뻗어 나가다 점차 가느다란 잔가지로 흩어지는 모양이 꼭 해부도 속 기관과 기관지를 닮아 있었다. 폐가 세상을 향해 가지를 뻗은 것 같았다.
‘폐의 마을 어귀에 폐를 닮은 나무라니.’
우연이라 하기엔 그럴듯한 인사였다. 나는 혼자 헛웃음을 지었다. 나무 그늘을 지나 마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무를 지나자, 비바람에 글자가 하얗게 바랜 낡은 표지석과 졸졸 흐르는 좁은 개울이 보였다. 표지석을 지나며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어디부터가 마을이고 어디까지가 바깥 산길인지 가늠할 만한 경계는 보이지 않았다.
마을을 둘러싼 성벽도, 출입을 막는 큰 대문도 없었다.
산 그림자에서 흘러나온 물은 아무런 검문도 받지 않은 채 마을 고샅길을 지나 너른 들판으로 빠져나갔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낮은 돌담 틈새와 열린 사립문, 기울어진 처마 밑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밭고랑은 집 마당 앞까지 이어졌고, 골목길은 어느 굽이에서 밭길이 되었다가 그대로 뒷산 오솔길로 녹아들었다.
‘이 마을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그 물음을 따라 지난 여정의 기억들이 잇달아 스쳐 지나갔다.
온 세상을 공포로 옥죄었던 감염의 시절, 우리는 숨을 멈추고 문을 걸어 잠그며 바깥을 밀어내려 발버둥쳤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바깥의 공기를 쉼 없이 들이마셔야만 했다.
아득한 옛날 물에서 뭍으로 기어 올라온 생명이 제 몸 안에 가둔 태고의 바다(內海). 그 축축한 바다와 바깥 세계의 메마른 대기가 1마이크로미터도 안 되는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던 폐포의 풍경이 겹쳐졌다.
생명의 경계란 제 안의 질서를 지키면서도 바깥세상을 끊임없이 맞아들이고 흘려보내기 위해 열려 있는, 아주 유연하고 축축한 접면이었다.
마을 안길을 천천히 걸었다.
어떤 집은 사립문을 열어둔 채 마당 가득 가을볕을 받고 있었고, 어떤 집은 낮은 돌담 너머로 사람 기척만 희미하게 났다. 마당 안쪽에는 겨우내 먹을 곡식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울타리 밖에는 태우고 남은 재와 부산물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었다.
마을이 살아가려면 모든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엇이든 마구 들일 수도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칸에서, 앞사람이 남긴 온기에 몸서리쳤던 순간이 스쳤다. 내 몸은 들어오는 모든 것을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하지는 않았다. 숨 한 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먼지와 꽃가루, 점막에 붙은 미생물을 무작정 불태우지 않았다.
몸은 먼저 차이를 알아챘다. 무해한 스침은 너그럽게 흘려보냈고, 불가피할 때만 알맞게 맞섰다. 싸움이 끝나면 곧바로 칼을 거두고, 상처 입은 자리를 본래의 결대로 복구했다.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는 몸은, 세계와 맞닿는 경계에서 끊임없이 차이를 감지하고 그때그때 맥락에 맞추어 제 상태를 바꾸는 고도의 지능을 품고 있었다.
어느덧 해가 중천을 넘어 마을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마을의 시간은 저마다의 리듬으로 흘렀다.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푸르스름한 연기, 밭일을 끝내고 호미를 씻는 노인의 느린 손길, 추위가 오기 전에 덧문을 닫는 소리가 서로 다른 속도로 겹쳤다.
호흡과 심박, 자율신경이 서로의 속도를 맞추던 몸의 시간이 겹쳐 보였다. 폐는 끊임없이 들숨과 날숨의 마디를 만들며, 온몸의 엇갈린 리듬을 하나의 안정된 호흡으로 묶는 조율자였다.
‘치절(治節)’.
고전이 폐의 다스림을 두고 '마디(節)'라 부른 까닭이 마을의 느린 시간 앞에서 거듭 되새겨졌다. 생명의 질서란 열어야 할 때 열고 닫아야 할 때 닫으며, 때가 되면 다음 상태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능력이었다.
먹고 싶으나 먹지 못하고 눕고 싶으나 눕지 못하며 온몸의 리듬이 흩어진 백합병(百合病)의 어긋난 몸이 떠올랐다. 병은 제때 반응하지 못할 때만이 아니라, 끝내야 할 반응을 끝내지 못하고 본래의 안정된 축으로 돌아오지 못할 때에도 찾아왔다.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낮은 언덕의 정자에 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집과 밭, 굽이치는 골목과 개울, 멀리 산등성이로 이어지는 오솔길들이 얽혀 한 생명체처럼 숨 쉬는 듯했다. 어느 집 한 채를 꼬집어 ‘마을’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그 관계망이 사라진다면 마을 또한 존재할 수 없다.
뜨거운 커피잔을 쥐었을 때, 힘을 스스로 조절하던 손가락 근육의 감각이 떠올랐다. 화상의 기억이 스칠 때 먼저 굳어지던 어깨와 얕아지던 숨도 함께 살아났다. 지나온 시간과 경험의 흔적은 머릿속 기억으로만 남지 않았다. 다음 자극을 맞을 때 살갗이 보이는 예민함, 호흡의 깊이, 굳어지는 근육의 결, 온몸의 습관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이 이름 없는 생명의 질서 앞에서,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영추(靈樞)』의 문장이 조용히 떠올랐다.
「並精而出入者,謂之魄.」
(정(精)과 함께 드나드는 것을 백(魄)이라 한다.)
「肺藏氣,氣舍魄.」
(폐(肺)는 기(氣)를 간직하고, 기는 백(魄)의 거처가 된다.)
고전이 말한 백(魄)은 이성의 빛을 받지 못하는 어둡고 낮은 본능의 잔재가 아니었다. 의식이 싹트기 훨씬 전부터, 생활 세계와 맞닿은 몸이 자극을 감지하고, 지나온 경험의 흔적을 제 몸의 경계와 리듬에 새겨 다음 순간을 맞이하도록 이끄는 ‘체화된 생명지능’이었다.
그리고 그 백(魄)이 깃든다는 기(氣)라는 이름의 거처를 찾아 산길을 헤매던 시간도 스쳤다.
걸음이 대지 위에 길을 새기고 그 길이 다시 다음 걸음의 궤적을 만들던 산자락의 오솔길, 끊임없이 다른 물줄기를 흘려보내면서도 제 형태를 잃지 않고 맴돌던 개울가의 소용돌이가 떠올랐다. 생명은 고정된 덩어리라기보다는, 외부와 쉬지 않고 물질을 교환하고 경계를 스스로 만들어내며 질서를 이어가는 ‘과정의 패턴’이었다.
테니스장 절반 넓이에 이르는 가슴속 폐포와 몸 외부를 둘러싼 피부라는 광활한 접면에서, 세계와 맞닿아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출입하고 변화하는 생명의 전신적 흐름.
‘기(氣)는 작동 중인 생명(life in operation)이자, 생명의 동적 작동성(operativity)이다.’
고전이 폐(肺)를 가리켜 '기의 근본(氣之本)'이라 말한 까닭은, 생명이 환경과 맞닿아 경계를 만들고 외부를 받아들이며 몸 전체를 하나의 살아 있는 흐름으로 지탱하는 이 거대한 작동성이, 폐(肺)라는 경계 시스템을 통해 가장 또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기(氣)라는 작동하는 생명의 바다가 출렁이고 있었기에, 비로소 백(魄)이라는 살아 있는 몸의 지능 또한 제자리를 얻어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자 기둥에 등을 기대자, 장례식장의 서늘한 공기와 함께 깊은 상실의 기억이 스며 나왔다.
한 사람의 부재는 단순히 머릿속으로 ‘사망’이라는 정보를 인지하는 사건이 아니었다. 그의 목소리를 기다리며 기울이던 귀의 각도, 그의 발걸음에 맞추어 걷던 보폭, 그와 함께 식사하던 속도, 그가 당연히 거기 있으리라 믿고 열어 두었던 몸의 모든 예측과 반응 체계가 일순간에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가슴이 찢어지듯 뻐근해지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던 그 비애의 감정은, 몸의 역사적 지평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없게 되었음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실존적 사건이었다.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말한 행화적 인지(enaction), 안토니오 다마지오가 짚어낸 신체 표지와 정서의 뿌리, 리사 펠드먼 배럿이 밝힌 경험으로 빚어지는 감정의 원리까지.
이들이 현대 인지과학의 언어로 연 문들은 저마다 다른 길을 가리키는 듯했지만, 결국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마음은 결코 두개골 안에 갇힌 섬이 아니었다. 살갗의 온도와 장부의 리듬, 호흡의 깊이, 세계와 맞닿은 접면에서 쉬지 않고 길어 올려지는 생명의 춤이었다.
‘분이불리(分而不離), 통이불혼(通而不混).’
(나뉘어 있으되 떨어지지 않고, 통하되 뒤섞여 어지러워지지 않는다.)
백(魄)과 감정, 몸과 마음은 세계와 마주한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깊이에서 본 측면들이었다.
정자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용히 눈을 감았다.
호흡을 가만히 지켜보려 하자, 자연스럽던 숨결이 이내 삐걱거리듯 어색해졌다. 숨을 의식하는 순간 숨은 제 리듬을 잃었고, 주의를 놓으면 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스스로 다음 들숨을 온전하게 채웠다.
호흡은 의도를 지닌 '나(神)'와, 나의 명령 없이도 묵묵히 삶을 밀고 나가는 '살아 있는 몸(魄)'이 하나의 밧줄을 함께 쥐고 있는 접점이었다.
언덕 아래로 펼쳐진 마을의 길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이 뱃속 깊은 곳(中焦)에서 시작하여 위장과 대장을 감고 폐로 올라와 마침내 엄지손가락 끝으로 뻗어나가듯, 몸의 길들은 어느 한 장기나 신경 회로에 갇히지 않은 채 전신을 하나의 관계망으로 엮고 있었다.
어느 집 한 채만 보아서 마을의 깊이를 알 수 없다. 백(魄)의 시야 하나만으로 생명 전체를 다 보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입체 안경의 양쪽 렌즈는 서로 다른 각도의 시차(視差)를 겹쳐 비로소 세상의 깊이를 만들어낸다. 고전이 건네준 오신(五神)의 지도 또한 마찬가지다. 생명을 나누어 맡은 다섯 영혼이 아니라, 하나의 온전한 생명을 서로 다른 깊이에서 비추는 다섯 개의 렌즈다.
이번 폐(肺)로의 순례에서 우리가 생명의 모든 것을 본 것은 아니다.
그저 오랫동안 먼지에 덮여 있던 백(魄)이라는 첫 번째 렌즈를 닦아내고, 그 렌즈가 비추는 생명의 첫 초점을 더듬어 맞추어보았을 뿐이다.
체화된 생명지능이 어떻게 내일을 향한 행동의 의지와 바람(魂)으로 이어지는지, 생명이 나라는 윤곽을 세우고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
더 깊은 물음은 다음 순례길에서 마주할 다른 렌즈들의 몫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서산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기울며 온 마을이 노을빛으로 물들었다. 올라왔던 길을 따라 천천히 마을 어귀로 내려왔다.
처음 만났던 그 큰 느티나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을 다 떨군 앙상한 가지들이 늦가을 저녁의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낮게 흔들렸다.
마을에 들어올 때 나는 저 굵은 줄기에서 갈라진 수많은 갈래를 보며 폐와 기관지의 모양을 떠올렸다. 나무의 가지가 하늘로 팔을 뻗듯, 내 가슴속의 기관지도 바깥 세상을 향해 뻗은 '나의 가지'라 여겼다. 내 몸이라는 주체가 제 가지를 내밀어 공기를 움켜쥐는 모양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노을빛을 등진 채 서 있는 나무의 그림자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묘한 전율이 등을 타고 흘렀다.
이것은 가지가 아니었다.
뿌리였다.
보통 나무는 땅속 깊이 뿌리를 뻗어 흙과 물을 빨아들인다. 그러나 내 가슴속에 들어앉은 이 나무는 그 방향이 반대였다. 내 몸이 세상 속으로 가지를 뻗은 것이 아니라, 저 광활한 대기의 바람이 내 몸의 경계를 뚫고 가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와 스스로 수많은 갈래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기관지(氣管支)를 가지(枝)로 여겨 온 데에는, 인간이 제 몸을 세계의 중심에 두려는 오랜 오만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가지가 아니라, 하늘이 인간이라는 흙 속에 내린 숨의 뿌리(根)였다.
가슴속 140제곱미터에 이르는 폐포는 바깥의 우주가 내 안에 뿌리내리기 위해 펼쳐 둔 대지였다. 1마이크로미터도 안 되는 얇은 막을 사이에 두고, 대기의 숨결과 모세혈관의 피가 서로를 바꾸고 있었다.
내가 숨을 쉬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가 내 안으로 흘러들어, 나를 흙 삼아 숨 쉬고 있었다.
생각이 미치기 전에 심장을 뛰게 하고, 의식하지 않아도 다음 들숨을 온전하게 채우던 저 ‘백(魄)’의 아득한 지능은 바로 이 숨결에서 비롯되었다. 자아나 의지가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대지와 하늘이 내 몸속으로 보내온 숨의 흐름이 나를 살아가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저 늙은 느티나무가 온종일 뿜어낸 맑은 숨결이 내 핏줄을 타고 온몸의 세포로 흘러들었다. 내가 내뱉은 날숨은 다시 저 나무의 잎과 줄기, 흙 속 미생물의 몸이 되어 다음 계절의 새 잎이 될 것이다.
나라는 존재는 피부라는 껍질 안에 갇혀 있지 않았다.
세계가 내 가슴속에 숨을 불어넣고 있었고, 나 역시 매 순간 내뱉는 숨으로 세계의 몸에 보이지 않는 물길을 열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몸속으로 숨을 나누며, 서로를 통과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두 눈을 감고, 차가운 저녁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셨다.
마을을 지나 저 나무를 스친 바람이, 늦가을 산골의 서늘한 기운이, 가슴 깊이 뻗은 뿌리를 타고 아늑하게 스며들었다.
溫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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