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谷의 따뜻한 생명 읽기

肺 폐로 가는 길 · 제8편

第6程.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

백(魄)은 어디에 머무는가

溫谷 · · 12분

유리창을 통과한 오후의 볕이 나무 탁자 한쪽에 비스듬한 사각형의 온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증기가 치익— 하고 길게 빠져나가는 소리, 원두를 가는 그라인더의 둔탁한 진동음, 찻잔과 받침이 맞부딪치며 내는 맑고 가벼운 마찰음. 갓 볶아낸 원두의 쌉싸름한 탄내와 데운 우유의 고소한 단내가 공기 속에 얇게 겹쳐 떠돌았다.

펼쳐 놓은 책장 위로 옅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카페 안에는 그런 익숙한 소리들이 잔잔하게 이어지고 있었고, 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오후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문득 잔을 향해 손을 뻗었다.
‘커피 한 모금 마셔야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은 그 짧고 단순한 문장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그 사소한 의도가 손끝에서 입술로 옮겨 가는 동안, 내 몸 안에서는 내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수많은 움직임이 조용히 맞물리고 있었다.

시선이 먼저 잔의 둥근 테두리와 손잡이의 기울기를 가늠한다.

몸통이 미세하게 앞으로 기울고, 등과 어깨의 근육들은 손끝이 향하는 방향에 맞추어 긴장을 조금씩 바꾼다. 다섯 손가락은 손잡이와 잔의 표면을 나누어 쥐며 잔의 무게를 가늠한다.

잔이 허공을 지나 입술을 향해 올라오는 동안에도, 팔꿈치와 손목은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미세한 떨림을 보정한다. 잔의 가장자리가 아랫입술에 닿기 직전, 피부는 옅은 김을 통해 음료의 열기를 미리 읽어 낸다.

그 순간, 숨이 멎는다.

기도와 식도가 교차하는 인두의 좁은 갈림길에서, 들이쉬던 공기와 쏟아져 들어올 뜨거운 액체가 부딪치지 않도록 호흡은 찰나의 마디를 만든다. 숨이 잠시 멎는 사이 기도의 문은 닫히고, 혀와 인두, 식도의 연동운동이 물결치듯 이어지며 한 모금의 액체를 몸의 깊은 안쪽으로 넘겨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잔이 다시 받침의 중앙으로 안전하게 내려앉을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내 근육과 신경에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적이 없었다.

‘마셔야지’라는 단순한 의도만으로도, 몸은 수백 개의 근육과 감각 수용기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맞추며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고 있었다.

나는 실제로 무엇을 지휘하고 있었던가.

한 모금의 커피가 목구멍을 넘어간 뒤에도, 세계를 받아들인 몸의 반응은 끝나지 않았다.

입안에 남은 쓴맛과 산미, 비강(鼻腔)을 타고 맴도는 향기가 감각계를 자극하자, 뱃속 깊은 곳의 위장관이 이미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뇌에 닿기도 전인데도, 냄새와 맛이라는 감각적 단서만으로 몸은 이미 다가올 변화를 예감하듯 심박의 리듬을 조금 달리하고, 자세도 미세하게 바꾸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읽던 책의 다음 장을 넘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몸은 외부 세계에서 들어온 한 모금의 물질을 받아들이고 소화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생리적 상태를 스스로 재조정하고 있었다.

第4程에서 마주했던 호흡의 물음이 다시금 선명해졌다.

나는 아무것도 명령하지 않았는데, 몸은 어떻게 이토록 정밀하게 안팎의 때와 마디를 맞추어내는 것일까.

잔을 다시 들어올리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등 뒤 가까이에 있는 카운터에서 날카로운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에스프레소 머신의 고압 밸브에서 증기가 갑자기 거칠게 터져 나오며 찢어지는 듯한 쇳소리가 났고, 이어 누군가의 손에서 미끄러진 도자기 잔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쳐 산산이 깨졌다.

뜨거운 증기의 열기와 날카로운 파열음, 손끝에 남아 있던 머그잔의 미지근한 온기가 찰나에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동시에 손이 잔에서 튕겨 나가듯 떨어졌다.

어깨가 귀밑까지 바짝 치솟고, 숨이 턱 막히며, 복부가 단단하게 굳어졌다.
심장 박동이 쿵, 쿵, 거친 박자로 명치를 두드렸다.

머리로 사태를 파악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깨진 것은 다른 이의 잔이었고 내 손등에는 뜨거운 물 한 방울 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내 잔은 쏟아지지 않았고, 나는 완전히 안전했다.

하지만 몸의 경보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머리는 이미 안전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굳어진 어깨와 가쁜 호흡은 그보다 훨씬 늦게 서서히 잦아들고 있었다.


그 짧은 시차 속에서, 잊고 있던 오래전의 한 장면이 몸속 깊은 곳에서 떠올랐다.

유난히 피로와 긴장이 쌓여 있던 어느 늦은 밤, 뜨거운 커피를 쏟아 손등을 심하게 데었던 기억. 피부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뛰며 한동안 숨을 고르지 못했던 그날의 흔적이었다.

이것은 머릿속에 선명한 장면으로 떠오른 기억이 아니었다. 몸이 그날을 닮은 냄새와 소리, 온도의 조각을 감지하는 순간, 과거의 방어 태세가 현재의 근육과 호흡 속에서 되살아난 듯했다.

나는 지금 내 앞의 잔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이미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 몸은 왜 마치 과거의 위험에 처한 것처럼 반응하고 있었을까.

단순한 반사만으로는 이 기묘한 반응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었다.

물론 뜨거운 것에 닿았을 때 의식적인 판단에 앞서 팔을 움츠리는 척수반사는 ‘생각보다 먼저 반응하는 몸’의 훌륭한 단서가 된다. 그러나 지금 내 손등은 데지 않았고, 잔은 화상을 입힐 만큼 뜨겁지도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깨지는 소리에 잠시 눈을 깜빡였을 뿐 이내 대화로 돌아갔지만, 내 몸은 훨씬 더 깊이 움츠러들었고 더 오랫동안 긴장의 여운을 품었다.

이 반응의 차이를 눈앞의 자극 크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과거의 경험이 위험을 감지하는 역치를 바꾸어 놓았고,
자극이 퍼져나가는 범위를 넓혀 두었으며,
긴장이 머무는 시간과 다시 고요해지는 속도를 다르게 길들여 놓았던 것이다.

몸은 과거의 경험을 단지 머릿속의 장면으로만 남겨두지 않았다. 다음 자극을 맞이할 ‘반응의 방식’ 자체에도 그 흔적을 새겨두고 있었다.

그 흔적은 뇌의 신경 회로에만 남는 것도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겪은 수많은 부딪힘과 긴장은 뇌의 신경 회로를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호흡의 깊이, 근육의 기본 긴장도, 자세, 자율신경계의 반응 역치, 그리고 내장 감각에 이르기까지 온몸의 결에 지워지지 않는 자국을 남긴다.

생명체는 과거의 사건을 서랍 속 서류처럼 보관하지 않는다.

그 경험은 감각과 긴장, 움직임과 회복을 조직하는 몸 전체의 방식 속에 함께 새겨져, 다음 세계와 만날 때 무엇을 감지하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 경계의 민감도 자체를 통째로 바꾸어 놓는다.

우리가 살아온 환경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는다. 몸의 자세와 호흡, 긴장과 감각, 움직임과 회복의 방식 속에서 계속 살아남아, 다시 세계와 만나는 몸의 일부가 된다.

몸은 세계와 부딪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만남의 흔적에 따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다시 조직해가는 거대한 가소성(plasticity)의 장이었다.

그렇다면 이처럼 의식보다 먼저 세계를 감지하고, 몸의 방어를 조직하며, 과거의 흔적까지 품고 살아가는 이 생명의 작동은 대체 어디에 머무는가.

나는 백(魄)의 소재지를 찾아 해부학의 지도를 펼쳐 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먼저 손을 거두는 척수 회로인가.
호흡과 심박 같은 원초적인 생명 기능을 조율하는 뇌간인가.
온몸의 장기와 혈관을 무의식적으로 조율하는 자율신경계인가.
바깥 세계와 넓게 맞닿아 있는 피부와 점막인가.
자기와 타자를 식별하고, 낯선 침입의 흔적을 기억하는 면역계인가.
제2의 뇌라 불리며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 장신경계(腸神經系)인가.
온몸의 장기와 근육을 그물망처럼 감싸며 긴장을 전달하는 근막인가.
아니면 신체 내부의 여러 신호를 통합해 몸의 상태와 위험을 감지하는 전부도피질(前部島皮質)인가.

이 모든 생리적 얼개는 백(魄)을 사유하게 하는 강력한 단서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 어떤 기관 하나도 백(魄)의 유일한 거처라고 지목할 수는 없었다.

손을 떼는 반응은 척수 반사만으로 독립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뇌와 몸의 상태에 따라 조절되며, 면역계와 점막의 식별 역시 전신의 신경·대사 신호와 맞물려 이루어진다. 전부도피질 또한 신체 내부의 신호를 통합하는 중요한 거점이지만, 이 모든 생명 조절을 홀로 담당하는 중심은 아니었다.

어느 한 장기에 백(魄)을 가두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소재지를 찾지 못한 채 막다른 골목에 섰을 때, 언젠가 신경생물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가 소개한 세포자동자 모형 하나가 떠올랐다. 그는 이 고리 모양의 단순한 계산 모형을 ‘Bittorio’라 불렀다.

수많은 단위가 하나의 고리를 이루며 연결되어 있었다. 각각의 단위는 전체가 어떤 모습인지 알지 못한 채, 오직 바로 이웃한 단위의 상태에 따라 다음 순간 자신의 상태를 바꿀 뿐이었다. 전체를 내려다보며 명령을 내리는 중앙의 지휘자도, 완성된 전체 패턴을 직접 지정한 설계도도 없었다.

그런데 이 국소적인 상호작용이 거듭되자, 개별 단위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복잡하고 질서정연한 패턴이 전체의 흐름 속에서 나타났다. 질서는 어느 한 단위 안에 들어 있지 않았다. 수많은 부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간 속에서 함께 변해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Bittorio는 살아 있는 몸을 대상으로 한 생물학적 실험이 아니었다. 개별 단위들의 국소적 상호작용만으로 중앙의 통제 없이 전체 수준의 질서가 스스로 형성되고(자기조직화), 그 과정에서 부분들만으로는 찾아볼 수 없던 새로운 성질과 패턴이 나타날 수 있음(창발)을 보여주는 계산 모형이었다.

그럼에도 이 단순한 모형은 내가 당연하게 품고 있던 물음의 방향을 완전히 뒤흔들어놓았다. 하나의 생명이 전체로서 일관된 질서를 보인다고 해서, 그 모든 작동을 통제하는 작은 주체가 반드시 몸 안의 특정 거처에 숨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물음은 ‘어디에 머무는가’가 아니라, ‘몸 전체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생겨나는가’로 바뀌어야 했다.

어쩌면 백(魄)은 몸 안의 특정 장소에 숨어 있는 하나의 독립된 주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생명이 경계에서 세계와 부딪칠 때, 감각과 긴장, 움직임과 회복의 수많은 과정이 서로 얽히며 하나의 생명 전체로 드러나는 그 무엇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가방에서 패드를 꺼내 『영추(靈樞)』 「본신(本神)」 편의 한 문장을 적어 내려갔다.

「並精而出入者,謂之魄.」
(정(精)과 함께 출입하는 것을 백(魄)이라 한다.)

이 구절에서 백(魄)은 정(精)과 함께 드나드는 관계 속에서 설명되고 있었다.

나는 이 구절을, 백(魄)은 생명의 물질적이고 원초적인 바탕인 정(精)에 뿌리를 두고, 생명과 환경이 끊임없이 만나고 영향을 주고받는 역동적인 출입의 과정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무엇으로 읽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또 하나의 조문이 시선에 박혔다.

「肺藏氣,氣舍魄.」
(폐(肺)는 기(氣)를 간직하고, 기(氣)는 백(魄)의 거처가 된다.)

기(氣)라는 글자에 숨이 턱 막혔다.

그 기(氣)가 무엇을 뜻하는지 당장 이 자리에서 섣불리 풀어낼 수는 없었다. 아마 이후 여정 어디선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 될 것이다.

폐(肺)–기(氣)–백(魄)으로 이어지는 이 오래된 연결고리는 내가 걸어온 순례의 자취들과 서서히 겹쳐지기 시작했다.

식어가는 커피잔을 앞에 두고, 第1程부터 걸어왔던 肺(폐)의 조각들을 하나씩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第1程에서 마주했던 경계.
숨은 바깥 세계를 몸 안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생명의 독자적인 질서를 잃지 않도록 안팎을 가르는 살아 있는 문이었다.

第2程에서 발견했던 형성과 적응.
생명은 물과 뭍이 뒤섞이는 거친 회색지대에서 세계와 부딪치며 스스로 허파를 빚어 내고 제 몸의 형태를 바꾸어 왔다. 경계는 닫힌 벽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진화하는 접점이었다.

第3程의 식별과 관용.
건강한 경계는 낯선 타자를 무작정 공격하지 않았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에 저항할지, 그리고 언제 반응을 멈출지를 정밀하게 가려내는 능력이었다.

第4程의 전환과 치절(治節).
생명의 리듬은 굳어 있는 메트로놈이 아니라, 상황에 맞추어 박자를 바꾸고, 때가 지나면 다시 안정된 축을 찾아 가는 유연한 회복력이었다.

그리고 第5程의 엇갈리는 마디와 병리.
자극이 끝났는데도 몸이 다음 상태로 넘어가지 못하고 안정된 흐름을 되찾지 못할 때, 보이지 않던 조율의 질서가 고통을 통해 비로소 제 존재를 알렸다.

이 흩어져 있던 여정의 조각들이, 카페의 작은 잔 앞에서 단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계에서 감지하고,
변화를 식별하여 즉각 반응하며,
필요에 따라 몸의 상태를 전환하고,
마침내 다시 안정된 상태를 찾아가는 힘.

이것은 제각각 떨어진 기능이 아니라, 생명이 세계를 살아내기 위해 발휘하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의 질서였다.

그러나 카페에서 내 몸이 보여준 것은 단순한 상태 유지를 넘어선 것이었다.

경계는 외부를 감시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경계는 과거에 겪었던 만남의 흔적에 따라, 무엇을 중요한 변화로 감지하고 어떻게 반응할지, 그 기준 자체를 조금씩 바꾸어 가고 있었다.

살아 있는 몸은 세계와 마주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이런 가소적인 변화는 때로 몸이 새로운 환경에 더 잘 대응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그런 변화를 적응이라 부른다.

그러나 과거의 위협 속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형성되었던 그 필사적인 긴장이, 안전해진 현재의 일상에서도 풀리지 못한 채 굳어 버리면 그것은 병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몸이 겪는 만성적인 긴장과 예민함을 단순히 ‘고장 난 결함’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지금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그 과도한 움츠러듦조차, 한때는 이 몸이 위협을 견뎌 내며 형성한 생존의 흔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第4程과 第5程에서 말했던 ‘복귀(復歸)’의 의미 역시 다시 쓰여야 하지 않을까.

가소성을 지닌 생명에게, 사건 이전과 완전히 동일한 몸으로 되돌아가는 복귀란 있을 수 없다. 한 번 겪은 상처와 열기, 공포와 회복의 경험은 아주 미세하게라도 몸이 다음 세계와 만나는 방식을 바꾸어 놓기 때문이다.

복귀는 기억을 지우고 백지로 돌아가는 기계적 원상복구가 아니다.

그렇다면 복귀란, 경험이 남긴 흔적을 몸 안에 품은 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안정의 축’을 찾아가는 일에 가까운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해 보니, 생명의 리듬은 같은 자리만 맴도는 평면적인 원(圓)이 아니라, 돌아올 때마다 조금씩 다른 자리를 지나는 나선(螺旋)의 궤적에 가까웠다.

마침내 펜을 들어 지금껏 찾아 헤맨 백(魄)의 얼굴을 패드에 조심스럽게 적어 내려갔다.

"백(魄)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생명의 질서를 바탕으로 생활 세계와 부딪치며 스스로를 재조직하는 체화된 생명지능이자, 뇌의 이성적 계산을 넘어 몸 전체가 과거의 흔적을 품은 채 환경에 맞추어 감각과 반응을 끊임없이 변용해 가는 가소적(plastic) 지능이다."

여기서 말하는 생명의 질서는 한 개인의 삶에서 처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명은 첫 호흡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감지하고 반응하며 제 몸을 조절하는 어떤 질서를 품은 채 태어난다.

생명의 질서는 또한 완성된 채 굳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과 공간, 사건과 환경이 몸에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다시 감각과 반응, 긴장과 회복의 방식을 바꾸어 놓는다.

이것이 백(魄)의 최종적인 정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 사람의 순례자로서 내가 지금까지 걸어오며 사유한 하나의 해석이자, 몸 전체에 깃든 생명지능에 잠정적으로 붙여 본 이름이었다.


카페 안에 다시 평온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식어 버린 커피를 조용히 한 모금 머금었다. 방금 전의 놀람과 긴장은 가라앉았지만, 잔을 들어 올리는 손가락 끝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섬세하고 조심스러운 힘이 실려 있었다. 몸은 이미 방금 전의 파열음과 놀람의 흔적을 품은 채, 이전과는 조금 다른 몸짓으로 잔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패드 문서 한가운데에 길게 세로선을 하나 그었다.

왼쪽 칸에는 백(魄)이라 적고,
오른쪽 칸에는 폐(肺)의 감정(感情)이라 적었다.

백(魄)이 의식의 명령 없이도 몸과 세계의 만남을 이어 가는 생명질서라면, 그 선 너머에 적힌 감정은 그 질서와 또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있을까.

다음 여정에서는 저 선 건너편에 적힌 마음의 결을 차분히 따라가 보면 될 일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다음 장에 적힌 『영추』 「본신」의 조문을 무심코 읽어 내려가다, 펜 끝이 한 구절 앞에서 덜컥 멈춰 섰다.

「肺,喜樂無極則傷魄.」
(폐(肺)는 희락(喜樂)이 끝이 없으면 백(魄)을 상한다.)

숨이 멎는 듯했다.

오행(五行)의 배속에서 폐(肺)는 흔히 슬픔(悲·憂)과 연결된다고 배워 왔다. 그런데 고전은 왜 슬픔이 아니라 ‘끝없는 기쁨과 즐거움(喜樂無極)’이 폐(肺)의 백(魄)을 상하게 한다고 적어 두었을까.

슬픔을 찾아 나서려던 길목에서, 고전은 뜻밖에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넘쳐나는 기쁨의 파도를 내 앞에 툭 던져 놓고 있었다.

나는 패드 문서 위에 그어둔 백(魄)과 감정 사이의 세로선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선은 분명히 그어져 있었지만, 방금 읽은 한 문장은 그 경계가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다음 여정은 아마 그 선 너머의 낯선 물음을 따라가는 일이 될 터였다.